Games without End
끝이 없는 게임
Wonje Kang
2023. 3. 14 - 4. 4




강원제 작가는 회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들로 작업을 하며, 그림 그리기를 지속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림 그리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을 해왔다. 비물질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 오히려 실체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에 따라 사물로서의 작업이 사라질 때까지 작업하는 것이 작가의 목표이고 그 방법론을 앞으로 계속 연구하고자 한다.
2015년 초기작 러닝 페인팅에서 시작하여 무거운 그림, 부차적 결과,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 제로 페인팅, 카오스모스로 작품을 이어나간다. 이번 전시는 JJ중정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며 ‘무거운 그림(Weighty painting)’ 시리즈를 포함하여 ‘부차적 결과(By-product)’, ‘카오스모스(Chaosmos)’ 시리즈를 접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 철학과 실험적인 작품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러닝 페인팅은 ‘매일 그림 그리기 프로젝트’이며 이는 화가의 기본 조건인 그림 그리기 자체에 집중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며 작가는 화가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러닝페인팅 이후, 그려진 그림들은 목적을 달성한 지점이 아닌 목적을 달성하고 난 뒤의 ‘부산물’이 되었다. 이들을 스카폴딩 구조물에 설치한 작업이 부차적 결과이다. 이는 지나온 시간의 과정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 역시 러닝페인팅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작가는 러닝페인팅 이후 그려진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생각과 환경, 조형적 취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했기 때문이다. 그려진 그림에서 새롭게 취향을 반영한 특정 부분을 오려내어 새로운 그림을 색출하였고, 그렇게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후 작가는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을 더욱 잘게 분절하고, 무질서하게 흩어진 파편들을 다시 뭉치고 배열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업의 이름은 카오스모스이며 이 행위를 통해 마치 뿔뿔히 흩어져 있던 우주먼지들이 뭉쳐져 별이 되듯, 평면 그림들은 질료가 되어 새로운 형상으로 변모하였다.
비슷한 양상은 제로페인팅에서도 드러난다. 제로페인팅은 언제나 제로(0)의 상태에 있다. 그려진 이미지에 새로운 이미지가
덧 그려지거나 캔버스 프레임에서 탈각되어 다른 시리즈 작업을 위한 물리적 재료로 전환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원제 작가의 작품은 완성이란 이름으로 정지되어 있지 않고 규정할 수 없는 현재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지속된다. 독립 기획자 황수경은 작업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작가의 행위가 '정상우주론'과 관련한 소설<우주 만화>에서 은하계를 구슬 게임으로 묘사한 '끝이 없는 게임'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하였다. 대상을 그리는 행위 (과정)에 집중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과정은 <끝이 없는 게임>처럼 시작과 끝이 같은 순환하는 모습으로 발견될 것이다.
그림에는 완성이 없다. 완성을 위해 그림을 시작할지라도 작업 과정 속에서 처음의 의도는 희미해지고 결국 증발해 버린다.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목적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그리기’로 ‘그림’에 도달하려는 시도들은 매번 실패하고 만다. ‘그림’은 붙잡을 수 없는 유령처럼 실체가 없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뒤로 물러나며 실체가 되길 유보 한다. 나는 '그림'이 아닌 그것을 향해 가는 ‘그리기’ 속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기 행위에 집중해 작업을 하는 동안 생성된 흔적들은 그리기의 완성물이 아닌 부산물(By-product)이 되었고, 이 또한 완성된 형태로 고정되지 않고 변형을 거듭하며 지속되고 있다. 때론 가벼움이 쌓여 무거움(Weighty painting)이 되거나, 무질서해진 파편들이 뭉쳐져 새로운 질서의 세계(Chaosmos)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모든 작업 과정은 '그림'이 되는 순간을 무너뜨려 그것을 다시 '그리기(과정)' 속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들이었으며 결국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그림의 과정처럼 삶도 이와 같다면 우리는 무엇을 염원하고 소중하게 여길 것인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본다.
- 강원재 작가 작업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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