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충돌+
Collision+
Wonje Kang, Jaechul Jung
2024.07.02 - 07.27




예술은 언제나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통념에 물음표를 던진다. 익숙하다고만 여기던 것을 새롭고 낯설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거리감을 두고 있던 주제나 개념과 보다 가까워 질 수 있도록 이끌기도 한다. 이번 2인전 <Collision+>를 통해 선보이는 강원제, 정재철 작가의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통상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곤 하는 ‘충돌’의 개념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풀어내며 관람객에게 신선한 질문을 건넨다.
강원제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단어는 ‘과정’이다. 완성된 결과물 로서의 회화(painting)가 아닌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인 그리기(paint’ing’)를 목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Collision+>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카오스모스(Chaosmos) 시리즈인데, 현재 작가가 진행하고 있는 몇 가지 시리즈 중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카오스모스 를 이해하기 위해선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의 전체적인 작업 세계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은 평면 캔버스에 다양한 그림을 그린 뒤 그것을 물리적으로 분해하여 다음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작업을 또다시 해체하고 재배열하여 새로운 형태의 그 다음 작업으로 이어 나가는 방식인 강원제의 작업의 기반이 되는 제로 페인팅(Zero Painting)은 ‘그림은 완성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작가의 철학을 담고 있다. 무지개, 구름, 노을, 별똥별 등 우리 주변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금새 사라지는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동화적이고 생동감 있게 캔버스 표면 위에 그렸다. 이러한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한 번 결과물이 된 그림은 곧 사라져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한 부분이 된다. 이렇듯 부차적 결과(By-product) 와 선택된/선택되지 않은 그림(Selected/Unselected Painting) 이라는 다음 단계를 거쳐 더욱 잘게 분해되고 해체된 제로 페인팅 그림 조각들이 평면 위에 콜라주 되거나 둥글게 뭉쳐져서 입체물이 되는 형식이 카오스모스 이다. 전시된 작품을 가까이서 유심히 관찰해 보며, 다른 시리즈 작업을 위한 물리적 재료로 변형되기 전 작품의 흔적을 찾아 보는 것도 재밌는 요소일 것이다. 하얀 색 물감이 덧 그려지거나 알록달록한 페인트가 흩뿌려진 캔버스 조각 아래에서 한 때 존재했을 무지개나 구름을 언뜻 떠올리다 보면, 자신의 작업 정신과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해 꿋꿋이 진행한 과정 속에 담긴, 가장 처음 완성되었던 그림에 대한 한 순간의 아쉬움 또한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다.
‘질서’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와 ‘무질서’, ‘혼돈’이란 의미의 ‘카오스(Chaos)’의 합성어인 카오스모스 는 직관적으로 여러 미적인 요소 및 감각 간의 충돌을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한 번 완성된 작품을 파괴하고 다음 작업을 위한 재료로 사용한다는 개념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을 찬찬히 이해하다 보면 처음 느낀 서먹함, 혹은 일면의 거부감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여전히 카오스모스 작품과의 첫 만남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회화에 대한 생각과의 정면 충돌로 기억될 수 있다. “마치 우주 먼지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져서 별이 되듯이, 흩어진 회화들이 다시 무질서에서 질서로 이행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에너지를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는 작가의 설명처럼, 기존 회화의 관점과 ‘완결은 곧 또다른 시작’임을 주장하는 강원제의 작업 철학이 충돌하여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창조된 것이다. 강원제의 현재까지의 작업 과정을 미루어 보았을 때 카오스모스 시리즈 또한 여기서 영원히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전 작업들이 그래왔듯 또 다른 형식으로 변형되어 과정 속에서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전시 공간에 들어섬과 동시에 왼편에서 마주한 바닥에 비치된 작품을 나가는 길에 다시금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처음 마주했을 시엔 단순히 설치 미술 혹은 오브제로만 보였을 수도 있는 공 모양의 작은 입체물들 역시 상반된 개념들이 충돌하여 파생된 파편들이 뭉쳐져 만들어진 작품으로, ‘창조로 이어지는 충돌’이란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정재철 작가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작업의 주제는 ‘모순’이다. 대학생 시절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인도와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접하게 된 그 곳 사람들의 모습은 작가에게 매우 낯설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없이 누리던 일상 혹은 당연하게 여기던 장면들과는 상반된 생활을 하고 있던 그들의 현실을 직면하고 ‘인간은 모순된 인격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각한 빈부격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리카 알비노 사냥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상황들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해보며, 작가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 혹은 대다수가 고통받고 희생해야 한다는 현실의 모순을 꼬집고자 하였다. 따라서 정재철의 초기 작업은 현재 그리고 있는 추상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직접 촬영한 아프리카와 인도의 순간 속 인물, 혹은 위 언급된 모순된 상황 속의 인물 등 특정 대상을 선택해 표현해 오다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본인의 감정을 완전히 표출하는 데 있어 이목구비의 명확한 형태를 그리는 것이 다소 제약이 되는 부분이라 판단하였고, 점점 인물 자체의 외곽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낯선 얼굴(Unfamiliar Face) 로 시작해서 모순된 영역(Contradictory Boundary) 을 거쳐 현재의 미들 그라운드(Middle Ground) 까지, 점차 인물의 형체가 사라지고 물감의 질감과 색감으로만 표현되는 추상 작업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는 “인간은 항상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개인의 요구와 사회의 요구 간 접점이 서로 멀어지게 되면서 대립과 갈등이 생기지만 이러한 대립 이후 필요한 것은 ‘타협’”이라고 설명한다.
‘중도’ 혹은 ‘절충’이란 사전적 의미를 제목으로 반영한 미들 그라운드 시리즈는 여러 모순적인 현상들에 대한 불안, 분노 등의 감정과 타협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강렬히 외치고 있다. 정재철이 관심을 가지는 현상들은 모두 상반되는 정치적, 사회적 관점 간의 충돌로 인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바람처럼 절충과 타협으로 이어지기 위해 전제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것 또한 충돌이다. 충돌은 곧 문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내면의 충돌을 캔버스에 추상으로 표현해내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타협점을 찾게 되는 과정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캔버스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어떤 색과 물성을 사용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색깔과 색깔이 충돌하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덜어내는 행위와 다시 새로 덧칠하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가장 만족스럽고 이상적인 타협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과감하면서도 섬세하게 돌출된 물감의 텍스처와 거칠게 섞여 있는 색감, 그리고 긁어 낸 흔적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작가 내면에서 수없이 충돌해온 감정과, 이를 표현해 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절제하고 타협해온 흔적을 공유할 수 있게 하며, ‘충돌과 수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Collision+> 제목의 ‘+’는 ‘그리고’와 ‘긍정’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질적인 미적 요소들이 충돌하며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강원제의 카오스모스 시리즈와, 내면과 사회 속 갈등 요소들을 캔버스 위에 다양한 색과 붓질을 통한 물성의 충돌로 승화시킨 정재철의 미들 그라운드 시리즈는, 충돌 그 이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대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림으로써 오히려 그 긍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재철의 작품이 말하듯, 충돌은 감추기보다는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되었을 때 진정한 타협과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강원제의 작업 과정이 그러하듯,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파편들은 때로 새로운 대서사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