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침전 일기(Diary on Dregs)
Lowa Kim
2025. 7. 5 - 7. 26




"나는 어떤 시대의 끝에서 태어났을까." 이번 전시를 여는 김로와 작가의 질문은 단순한 시대적 위치에 대한 물음이 아니다. 세대를 가로지르는 기억의 유전자에 대한, 트라우마의 전이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물려받은 감정들과 그것이 남긴 흔적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다. 전쟁을 겪은 1세대의 생존, 그 잔해 위에서 견디며 일상을 재건한 2세대의 회복, 그리고 그 모든 층위의 경험을 '직접 겪지 않은' 채 이어받은 3세대의 현재. "나는 그들의 이야기 위에 서 있다. 그 아래엔 남에게 말하지 못한 상처가, 해석되지 않은 기억이, 기록되지 않은 감정이 층층이 쌓여 있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침전 일기 (Diary on Dregs)》는 서로 다른 세대가 겪은 고통과 치유, 그리고 그 침전된 감정들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차분하고 섬세한 언어로 직조한다.
이번 전시에서 김로와가 선택한 중심 색채는 '적색'이다. 작가에게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경험이 응축된 언어다. 그의 모든 작업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질병, 두려움, 경험 등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과 이야기에 대한 공통된 주제가 단어나 이미지가 아닌 하나의 색상으로 귀결된다. 이전 작업에서 검은색, 푸른색, 녹색을 택해 본인의 투병 과정 및 근원적인 두려움과 삶의 순환에 대한 사유를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붉은 스펙트럼을 통해 고통과 재생이 공존하는 유전된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적색은 상처의 색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색이다. 이러한 양가성은 침전된 감정의 복잡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타피스트리(tapestry)라는 매체 자체가 가진 특성 또한 이번 전시의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다. 실을 엮고 짜는 행위는 시간의 축적을 요구하며, 끊어진 듯 보이는 실들이 결국 하나의 직물로 완성되는 과정은 파편적인 기억들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는 것과 같다. 반드시 아래에서부터 시작해 실을 걸고, 위로 한 줄, 한 줄 쌓아 올라가야만 하는 직조 방식의 특성은 일방향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트라우마가 반복되며 겹겹이 쌓이는 과정을 나타내는듯 하다. 직조는 중앙에서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결코 먼저 짜여진 실들을 건너 뛰고 가운데에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전의 시간과 이야기 위에 그저 실을 얹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김로와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보편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우리는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그리고 '이토록 오래된 것들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구성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에게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또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때문에 《침전 일기 (Diary on Dregs)》는 완결된 서사가 아닌 진행형의 사유이며, 설명보다는 감각에 가깝다.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내면의 침전된 감정들을 일깨우는 촉매 역할을 한다. 끊어진 듯 보이는 관계나, 이해할 수 없는 침묵도 실처럼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 가능성을 엿보는 시도인 이번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마치 가라앉아 있던 침전물들이 어느 순간 조용히 떠오르듯, 미처 보이지 않던 이야기와 기억,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전시 기획/서문 | 최재우